<태왕사신기>가 좋은 작품인가, 라는 질문은 잠깐 미뤄둔다 해도 남아있는 질문이 있다. 최우수상, 우수상과 공동수상이라는 것이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외국의 권위있는 시상식들을 한 번 봐라. 이를테면 <에미상>이나 <그래미상> 같은 시상식에서 공동수상이라는 게 나오는지. 물론 간혹 나오기도 하지만, 소수점까지 심사결과가 동률이 나올 경우에만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상을 나눠준다. 게다가 그들은 엄정한 심사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시청률, 판매율, 흥행결과 따위는 단지 부수적이다. 오로지 작품과 연기와 완성도만을 가지고 꼼꼼하게 따진다. 그게 제대로 된 시상식이다. 시상식의 권위와 공신력은 거기에서 나오는 거다.
근데, 이게 뭔가. 시청률에 따라 좋은 작품과 좋은 연기의 기준이 판단되고, 신변잡기와 차기작품 홍보에 매진하는 이러한 저질스러운 시상식을 우리가 공중파를 통해 봐야하는 이유가 뭔가. 물론, 이런 지적은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연말 시상식의 파행에 대해 지적이 있어왔다. 그 대안으로 공중파 3사에서 통합으로 운영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근데 올해에도 여전히 ‘상 나눠먹기’는 계속되고 있다.
기실 이런 시상식 풍토는 한국 대중문화의 척박한 풍토를 드러내는 것이리라. 참신하고 좋은 작품이 외면당하고 시청률과 같은 성과주의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대중의 지지가 작품 판단의 절대적 근거가 되는 그 저열한 포퓰리즘을 그들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지지’라는 말은 실체가 없는 그 자체로 공허한 말에 불과하다. 다수를 만족시키기 위한 편의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과연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가 있을까.
2.
<하얀거탑>의 장준혁을 제치고 <태왕사신기>의 담덕이 대상을 받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정글 같은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개인의 생존본능보다는 한류라는 문화적 제국주의의 열망을 지지한다는 것 아닐까. 목발에 의지한 배용준의 모습과 방송국까지 찾아온 일본 열성팬의 화면을 계속 교차하면서 어쩌면 우리는 여기에서 부상당한 정복자의 당당한 귀환을 보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류의 열풍이 이제는 사그라든 시점에서 이는 다시 한 번 예전의 영광을 재현해주기를 바라는 욕망의 투사에 더 가깝다. <태왕사신기>라는 작품 자체도 완성도를 떠나 저열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수상식 자체로 그 수준에서 멀리 떠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니까 이는 '현실'보다는 '판타지'를 택한 것이다. '장준혁의 현실'보다는 '태왕의 판타지'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것들. 장준혁과 태왕은 긴밀하게 손을 잡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장준혁이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태왕의 판타지를 꿈꾸는, 혹은 꿈을 꾸도록 강제 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현실의 경쟁이 치열할수록 판타지 속으로 도피하려는 욕망 역시 강해지기 마련이다.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이러한 현실과 판타지의 간극을 어떻게든 메우려는 시도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속의 한국사회는 이 두 층위가 분열되어 드러났다. 우리는 분열증적인 세상속으로 살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판타지의 판정승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한국사회의 현실이 고단해질 것이라는 것을 예견하는 것일까. 이래저래 씁쓸한 시상식이다.


덧글
바스티스 2007/12/31 18:11 # 답글
어차피 어디로 눈을 돌리나 포퓰리즘과 자본의 논리로 가득 차있는 마당에, 굳이 시상식까지 그랬어야 하나 싶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알량하나마 고고한 척 자존심을 지키는 보루도 없는걸까요.
Elliott 2008/01/01 10:22 # 답글
바스티스/ 네 좋은 말씀이십니다. 동감해요.
아이비 2008/01/02 19:40 # 답글
두 작품 모두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당황스러웠어요. 재미의 성질이 전혀 다른 것 이어서, 당연히 거탑이 받을 줄 알았는데. 자본의 논리. 배용준을 좋아합니다만, 시상식에서 그는 '배우'가 아니라, '사장님' 같았어요.
Elliott 2008/01/03 10:08 # 답글
좋은 지적입니다. 재미의 성질이 다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