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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1.

사람들은 누구나 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야기는 때론 술자리의 구슬픈 넋두리로 흘러나올 때도 있으며, 불꺼진 방에서 홀로 쓰는 내밀한 일기로 수줍게 각자의 노트에 스며들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재능 있는 이야기꾼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사적인 공간에만 묵혀두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활짝 편 어깨처럼 자신 있게 타인들의 일상으로 틈입해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이야기의 기개(氣槪)는 이야기의 화자가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의 텃밭에서 발아한다. 그러니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란 자신을 응시하는 힘인 것이다.


나도 한 때 소설가를 바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평가하는 데는 제법이었을지는 몰라도 내 이야기를 풀어놓을 용기는 형편없이 모자랐다. 나는 나에 대해 항상 열등감을 느꼈고 때로는 혐오했으며 냉소했고 경멸했다. 물론 그런 내면의 유배가 작가가 될 수 있는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긍정하려고 애를 쓴 적도 있었으나 시효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소설가 김훈이 그의 산문의 첫 페이지에 적어 놓은 첫 문장, 모든 풍경은 상처로서 인지된다, 를 내 문학적 테제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또한 나는 소설가 고종석이 그의 소설에서 쉽게 되풀이하던, 염세와 혐인은 나의 힘, 이라는 표현을 나의 신앙고백으로 토로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그랬듯이 그때도 영화감독을 최고의 예술가로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소설가들에 대한 무언의 열패감 따위를 투사하곤 했다. 그건 일종의 유치한 욕구불만에 다름 아니었겠지만.


2.

오늘 인터넷으로 김연수와 김애란의 신간을 구입했다. 나는 김연수는 젊은 작가들 중에서는 가장 잘쓰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고, 김애란의 경우는 존재만으로도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작가라고 생각한다(나는 그녀에게 우리 세대의 목소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한편 나는 우리나라의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을 읽을 때 제일 먼저, 책 후반부에 자리한 ‘작가의 말’을 먼저 읽어본다. 이는 나의 독서습관 중 하나인데 소설의 경우, 그가 얼마나 진정을 갖고 썼는지, 혹은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나의 소설읽기에서 가장 중요하다. ‘작가의 말’이 정서적 끌림을 갖고 있을 경우 대개 소설작품도 좋다. 이 법칙은 내 소설선택에서 거의 틀린 법이 없다. 김언수의 ‘캐비닛’의 경우는 서점에서 우연히 ‘작가의 말’만 읽고 선택한 소설이었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수업이 지루해질 참이면 노트에다 가상의 소설제목을 적고 거기에 관한 작가의 말을 끄적여본 적이 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관심있는 작가의 소설들을 모두 빌려 작가의 말만 읽고 반납한 적도 있다. 작가의 말을 읽으면 나는 마치 그 작가의 소설을 다 읽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의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가는 최인훈과 조세희, 박상륭이었다. 이번에 구입한 김연수와 김애란의 소설 역시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좋은 작품일 것 같은 예감이 아주 강하게 든다.


3.

소설가의 이미지. 낡은 연필을 고집하는 김훈이나 타자기로 글을 쓰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폴 오스터, 혹은 맨 몸으로 수련하는 것에 정진하는 마루야마 겐지처럼 나에게 소설가들은 아날로그들이다. 나의 로망 중 하나는 데이빗 린치의 ‘광란의 사랑’에 나오는 한 허름한 모텔에서 맥주 두병을 갖다놓고 타자기로 소설을 쓰는 것이다. 하드보일드 작가로 유명한 제임스 얼로이가 이런 방식으로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소설가들 중 최고의 에피소드는 아무래도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일 것이다. 그는 잘 다니는 신문사를 때려치우고 콜롬비아의 사창가에서 매일 밤 ‘백년의 고독’을 써내려갔다. 그 경험담을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도 기록했지만, 나는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미녀 레메디오스’를 통해 그가 보아왔던 창녀들의 슬픈 표정들을 떠올렸다. 나는 허름한 다락방에서 자신이 몰래 흠모했던 어느 창녀를 떠올리면서 타자기를 두드려댔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떠올릴 때마다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소설가에 관한 나의 최고의 장면. 

4.
따끈따끈한 속보. 올해 노벨문학상은, 언론에서 말해온 고은도 하루끼도 아닌, 영국의 작가 '도리스 레싱'이 받았다. 이 할머니의 작품은 런던스케치만을 읽어본 게 전부인데, 마치 하드보일드를 읽는 느낌을 받았다. 우울한 도시 런던은 그녀에게는 시리고 추운 도시같았다. 하여간 조만간 서점에는 레싱의 새번역들이 또 등장하겠지. 할머니 상받은 것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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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rNoThink 2007/10/11 22:26 # 답글

    김애란의 신작은 작가의 말 중 '마침내 시시해지는 내 마음이 참 좋다.' 이거 하나로 싹 정리가 되더군요. 굳이 본문을 챙겨 읽지 않아도 될 듯한 충만함이었습니다.
  • 아이비 2007/10/11 22:43 # 답글

    작가의 말을 읽는걸 좋아합니다만, 엘리엇님과 마찬가지로 읽으면 왠지 소설의 내용을 모두 알아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나중에 아껴두었다가 읽습니다. 영화를 볼 때 반전은 알지 못하지만 반전이 있다는 것만 알아도 어지간히 신경쓰이는 기분으로. 내용은 생각이 안나고 작가의 말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경우도 많죠.
  • 바스티스 2007/10/12 05:05 # 답글

    몹시 진지하게 읽었다가 왠지 성의없는 듯한 작가의 말을 읽었을 때는 분명히 배신감을 느낄 수 있죠. 왠지 혼자 난리 부르스를 춘 느낌...
  • Elliott 2007/10/12 08:52 # 답글

    Mrnothink/ 하하. 그렇습니다. 이제 슬슬 그녀의 장편이 기다려집니다.
    아이비/ 내용까지는 좀 그렇고 느낌만 받을 뿐이에요. 순전히 직관에 의지해서 글을 읽는데 그게 바로 '작가의 말'이죠. 그들도 아마 직관에 의지해서 쓰지 않았을까요. 하여간 소설보다 '작가의 말'이 오롯이 남게되는 작품도 몇 있는 것 같습니다.
    바스티스/ 성의없게 쓰는 '작가'도 있나요. 적어도 작가라면 그 공간은 소중히 해야한다고 봅니다만.
  • 서울하늘 2007/10/12 10:00 # 답글

    흐흣 이런이런.. 저도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을 반쯤 읽고 있는 중입니다요. ㅋㅋ ^^ 도리스레싱의 다섯째 아이,,, 괜찮아요 섬뜩하고 황폐한 느낌이지만.... ^^
  • 바스티스 2007/10/12 10:53 # 답글

    "왠지 성의없는 듯한"이라는건....보다 가볍게 여기는 글도 있고 보다 무겁게 여기는 글도 있게 마련이니까요. 난 되게 진지하게 읽었는데, 정작 작가는 좀 단순히 가벼운 마음으로 쓴거였다던가. 뭐 그런거 말이죠. ㅎㅎ
  • shuai 2007/10/12 13:39 # 답글

    저와 같은 날 인터넷으로 김애린의 신작을 주문했군요. 오전에 책이 도착했더군요. 김연수는 아직 안읽어봤고, 김애린 역시 이번 소설이 처음입니다. 이 포스트를 보니 기대지수가 높아지는군요. 아아, 퇴근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언젠가는 Elliott님도 소설을 쓰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 Elliott 2007/10/13 10:00 # 답글

    서울하늘/ 아, 빠르시네요. 이번 김연수 신작 기대되던걸요. 다섯째 아이, 접수하겠습니다.^^
    바스티스/ 읽는 이의 마음이야 변화무쌍한 것이니까요. 흡.
    shuai/ 네. 그렇네요. ('김애린'이 아니라 '김애란' 소설을요;;) 김애란은 첫 소설집도 좋아요. 퇴근하시고 소설읽기로 달리시면 되겠군요. 포스팅 기대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 ArborDay 2007/10/13 13:03 # 답글

    김밥천국에서 밥을 먹으며 뉴스를 보는데 도리스 레싱이 노벨문학상에 당선되었다는 소식이 나오더군요. 그런데 그 뉴스를 보면서 남녀 한쌍이 거의 탄성을 질러서, 깜짝 놀랐답니다. 제가 사는 곳에 출판사가 몇 개 있어서 그런 것이었을까요?
    전 생소한 분인데 그렇게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는걸 보면서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답니다. 다리오 아르젠토가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이라도 수상하면 내가 저 모습일까 싶기도 했구요.
    김연수, 김애린. 그냥 넘어갈 이름이 아니네요. 한 번 경험해야 할까봐요.
  • 연필광대 2007/10/13 13:22 # 답글

    오늘만 김애란에 관련된 포스팅을 두 번째 보는군요.
    엘리엇님의 말대로 '우리세대의 목소리'가 돼줄지는 미지수지만,
    쟁쟁한 소설가들이 '될 놈'이라고 추천하는 소설가임엔 분명하죠. ^^
    나이보다 깊이 있는 시각, 감성적이고 섬세한 문장이 뛰어난 것 같아요.
  • 2007/10/14 05:0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Elliott 2007/10/14 11:07 # 답글

    Arborday/ 아. 적절한 비유네요. 다리오 아르젠토가 외국어영화상을 받는다는 것. 그때 사람들이 저 감독은 누구야, 라고 고개를 갸웃거릴때 환호성을 지르는 Arborday님을 한번 떠올려봅니다. 소설은 직접 읽어보세요. ^^
    연필광대/뛰어난 작가들의 조건은 조숙한 시각, 섬세한 문장을 갖추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저는 김애란에게 뭔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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