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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얼티메이텀.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이 창대한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 제이슨 본 시리즈의 마지막편인 이 영화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던 제이슨 본은 본 슈프리머시를 경유해 이 마지막 시리즈에 당도하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내가 볼 때 그것은 덕 라이먼에서 폴 그린스래스로 연출자가 바뀌면서 생기게 된 변화이고, 그런 의미에서 본 얼티메이텀은 그랜스래스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영화이다. 물론 같은 시리즈물이라 해도 감독의 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멀게는 ‘더티해리’부터 가깝게는 ‘007 카지노로얄’까지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다. 폴 그린스래스는 본 시리즈의 두 번째 에피소드부터 메가폰을 잡았는데,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이 두 번째 에피소드와 본 얼티메이텀은 일종의 짝패다. 그러니까 제이슨 본 시리즈는 엄밀히 말하자면 덕 라이먼의 첫 번째 영화와 폴 그린스래스의 영화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덕 라이먼의 무미건조한 연출보다는 후자의 박진감 넘치는 연출을 편애하지만 말이다.


러시아에서 경비병들에게 쫓기는 제이슨 본의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위기에 몰린 제이슨 본은 가까스로 그 위기를 타개하며 무기가 없는 러시아 경비병에게 러시아어로 말한다. 넌 나의 적이 아니야. 그렇다. 제이슨 본의 적은 결코 외부에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내부의 커다란, 하지만 극복해야할 적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수렴된다. 이중의 정체성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는 제이슨 본에게 어느 한 쪽은 부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의 신체에 두 개의 정체성은 온전한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이슨 본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외부의 적에 맞서 내부의 대결에서도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이중의 정체성은 결국 이중의 투쟁을 수행해야 한다.


한 편, 권력의 시스템의 입장에서 그는 일종의 돌연변이다. 철저한 동일성을 유지해나가야 하는 것이 시스템의 주요한 속성이라면, 한 개체가 개별적인 정체성을 회수하려는 시도는 위기상황인 셈이다. 그것은 권력이라는 가상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이며 그것의 실체가 폭로되려는 순간이다. 이 거대한 시뮬라크르의 체계의 무한증식이 중단된다는 것은 곧 종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CIA 간부인 노아 보슨의 안간힘을 납득하기란 어렵지 않다. 노아 보슨을 연기한 데이빗 스트라던의 편집증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딱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을 것이다. 데이빗 스트라던은 조지 클루니의 ‘굿 나잇 앤 굿럭’에서 에드워드 머로우라는 전설적인 언론인의 역할을 탁월하게 소화해낸바 있다. 좋은 액션영화에는 주인공에 걸 맞는 악당이 있어야 하는 법. 노아 보슨은 최적의 인물이었다.


제이슨 본은 자신이라는 괴물을 창조한 아버지에게 성큼성큼 걸어간다. 물론 그 행적은 유럽의 유명 도시들을 거쳐 모로코를 경유해 우회한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리플리컨트들이 자신들의 아버지를 향해 투쟁을 벌이듯, 제이슨 본 역시 비슷한 투쟁을 벌인다. 그는 2000년 전의 오디세우스처럼 아주 먼 여행을 해야만 했지만 이제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은 목전에 있다. 그는 노아 보슨을 향해, 자신을 만들어 낸 기억속의 과학자를 향해, 아버지의 심장을 향해 나가간다.


군말/ 이 영화는 그야 말로 ‘핸드헬드(들고 찍기)’ 촬영의 진수를 보여준다. 폴 그린스래스의 전작들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핸드헬드는 그야말로 인물들의 뒤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참 지독한 핸드헬드다. 여하튼, 다큐멘터리에서 장르영화까지 고집스러움이 느껴질 정도로 그린스래스 감독에 핸드헬드에 대한 집착은 대단하다.

by Elliott | 2007/09/14 10:59 | kino | 트랙백(1)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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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7/09/28 00:41

제목 : 본 얼티메이텀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엄청난 전투능력과 막대한 공작금을 무기 삼아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문의 암살자 제이슨 본. 사랑하는 여인 마리 크로이츠마저 적의 손에 의해 살해당하고 삶의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본은 천신만고 끝에 자기를 훈련시킨 자들의 소재를 알아내고 그 거대한 음모의 실체에 한 발짝씩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적들도 본의 위치를 추적하면서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책략을 준비한다. 막강한 ......more

Commented by woody79 at 2007/09/14 11:11
전 사실 덕 리만의 연출도 나쁘지 않았더랍니다 ㅎㅎ
Commented by 쿨짹 at 2007/09/14 11:57
오~ 드디어 보셨군요. 전 핸드헬드 ㅡㅡ때문에 멀미했어요.
Commented at 2007/09/14 14: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Yuius at 2007/09/14 16:13
저도 핸드핼드때문에 멀미에 시달렸습죠 ㅠ.ㅠ
영화는 상당히 좋았어요 :3
Commented by 서울하늘 at 2007/09/14 16:38
움하하하하하 맷 데이먼을 근 십여년 동안 사모한 저로써는.. 본 시리즈의 끝이 아쉽지만.. ㅎㅎ 꼭 봐야지! >.<;;
Commented by 뮤탄트 at 2007/09/14 16:47
저는 세 편 다 강추강추
Commented by 사은 at 2007/09/14 18:49
본 아이덴티티는 졸린 눈을 한 친구네를 기습해서 봤던 영화였습니다. 그다지 기대하지 않고 보았는데, 재미있다! 괜찮다! 하고 생각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세 편이 함께 모였을 때의 그 색다름, 깊음이 영화가 한 편 한 편 쌓이면서 조금씩 피어난 것이 인상적인 시리즈였어요.
Commented by 히치하이커 at 2007/09/14 23:13
전 아이덴티티부터 좋아했사옵니다.
내일 일찍 보러가기로 했는데...가슴이 쿵닥거리고 있답니다. 으흐흐.
Commented by Elliott at 2007/09/15 08:52
woody79/ 네. 그렇군요. 본 지가 오래되서 다시 찾아볼 예정입니다. 제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 .
쿨짹/ 제 여자친구도 비슷한 증상을 보였습니다. ;;;
비공개/ 연출이 참 탁월했지요. 맞습니다. 음악 얘기를 빠뜨렸는데, 모비의 엔딩타이틀곡도 좋았고, 전체적으로 두근거리게 만들더군요.
yuius/하하. 핸드헬드 증후군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
서울하늘/ 나중에 박스세트 디비디가 나오면 질러볼 예정입니다. ㅋ
뮤턴트/ 네네. 언제 세 편을 복습할 기회가 오겠죠.
사은/ 저도, 본시리즈는 우연히 본 영화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맷데이먼이 스파이영화에 나왔던게 무척이나 생소했었거든요.
히치하이커/ 네. 재미있게 보시고 포스팅하세요. 흐흐.
Commented by 연필광대 at 2007/09/17 00:54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 묶음 DVD가 동이 났답니다. ^^
본 시리즈 중 최고! 라는 의견엔 백만표~던지구요.
사랑스런 맷 데이먼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는 눈물이....하하
특히 마지막 수영씬은 참으로 유머러스하고 사랑스럽더이다.
Commented by Elliott at 2007/09/17 11:46
연필광대/ 연필광대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후후. 저도 얼마전에 '슈프리머시'를 디비디로 구했는데, 아이텐티티는 구하기 어렵더군요. 뭐 조만간 세편 박스로 나올테지만. 하여간 마지막 앤딩 장면 말씀하신대로 사랑스럽습니다. 가끔씩 생각나던데요. 인상적이었어요.
Commented by 하치 at 2007/09/21 10:52
이번 추석연휴에 꼭 봐야하는 영화 리스트에 넣었어요. 연휴에 영화 질리도록 봐야지.ㅎㅎ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7/09/28 00:42
저도 본이 고향(?) 찾아가는거 보면서 타이렐사 찾아가는 레플리컨트들 생각이 났는데 다행히도(?) 창조주를 자기 손으로 죽이지는 않더군요. (아니 죽일 틈이 없었던 건가;;;) 어떤 면에서는 블레이드 러너보다 한수 위일지도. =)
Commented by Elliott at 2007/09/28 09:35
하치/ 연휴에 영화는 질리게 보셨나요. 후후.
잠본이/ 그냥 더 인간적이고 너그럽다고 생각하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본은 레플리컨트는아니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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