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노 나쓰오의 <아웃> - 그녀들의 퇴장. 책읽기

 

일본미스터리소설계는 미야베 미유키라는 대표명사로 수렴될 수 있는 줄 알았다. 적어도 그 바닥에 대한 교양이 일천한 나로서는 미야베 미유키의 존재감이 우뚝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일본미스터리계의 ‘대모(大母)’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괜한 허명이 아님을 ‘화차’나 ‘이유’와 같은 작품들을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내 판단은 그저 식견이 부족한 자의 성급함이라는 것은 한 여자가 깨닫게 해주었다. 그녀는 기리노 나쓰오였다.


기리노의 주옥같은 작품들 중에서도 그의 대표작으로 거명될 수 있는 작품은 ‘아웃’이다. 사실 그녀의 유명세는 인터넷을 통해서 대충 흘려듣고 있었지만 어제 하루 날을 잡아 ‘아웃’을 읽었다. 무려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읽어치우게 만드는 그 흡입력과 탄탄한 구성은 참 기가 막혔다. 오랜만에 장편을 단숨에 읽는 경험은 나로서도 놀라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진가가 딱 여기까지라면 시시하리라. 그녀의 문학적 재능은 인물들의 섬세한 심리묘사에 있다. 흡입력을 가진 소설들은 많지만 그것이 고결한 문학성까지 갖추기란 쉽지 않은 법. 이른바 작품의 가독성이 그 작품이 가진 대중성의 잠재력을 시사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문학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기리노의 소설에서는 가독성과 문학성이 강렬함으로 주어진다. 그렇다면 그녀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문학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조건을 반성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도시락 공장에 야간근무를 하는 네 여성이 우연히 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이다. 야요이, 마쓰코, 요시에, 구니코가 그들이다. 그들은 도시락 공장의 근로자라는 공통분모 말고도 한 가지 공유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들이 가정에서 가장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그들이 밤에 컨베이어벨트에서 도시락을 만들어서 밥을 벌어야 할 정도로 하층계급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들의 근면성은 가정에서 보상받지 못한다. 야요이의 남편은 도박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고, 마쓰코의 아들은 18년이 다 되도록 실어증에 침묵하고 있으며, 요시에는 병든 시어머니를 혼자 수발하느라 마음이 황폐해졌고, 구니코는 실종된 남편과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허영기속에서 방황한다. 가족은 그들에게 한마디로 굴레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가족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이는 야요이가 이제 돌아가고 싶어, 라는 한 마디에 꾹꾹 눌러져 있다. 결국 이들의 고된 일상에서 오는 피로는 야요이가 우발적으로 출근하려는 남편을 현관에서 살해함으로써 분출된다. 그리고 마쓰코는 자발적으로 시체를 전담해 자신의 욕실에서 요시에와 구니코와 토막을 내 처리를 낸다. 하지만 살인을 둘러싼 여성들끼리의 모종의 연대는 단지 성적인 동질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계급적 연대에 더 가깝다. 마쓰코는 동료들에게 말한다. 힘들 때마다 가족을 죽이고 싶은 생각 들지 않아.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처리해 줄 수 있는데 말야. 요시에와 구니코는 마쓰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작품의 해설을 쓴 마쓰무라 리에코는, “1997년 당시는 그렇지 않아 ‘1억 모두 중산층’이라는 틀에 박힌 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 아직 많았다고 생각한다. ‘아웃’에서 그린 도시락 공장의 야근 일을 하는 여자들이야 말로 모두가 중산층이라는 이미지가 퍼진 이후 처음으로 소설에 등장한, 그런 되지 않는 환상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한 구체성을 갖춘 인물이 아니었을까.” 라고 말한다. 실제로 작품의 배경은 일본경제가 부동산 버블로 침체를 겪게 되는 90년대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근거로 마쓰코가 버블로 인해 해고된 전직 금융직원이라는 것과 구니코가 사채의 높은 금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기리노는 이 작품을 통해 불경기 시대 하층계급 여성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살인과 시체유기에 대한 그들의 공모가 단지 개인적인 차원의 것이 아님을 방증한다. 특히 네 인물 중 가난의 무게가 큰 요시에와 구니코는 야요이에게 생활비가 모자라 약속한 보수를 독촉하는 장면은 이들의 범죄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폼나게 이루어지는 연대와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생활을 좀더 개선하기 위해 결국 마쓰코와 요시에는 마쓰코가 금융직원이었던 시절 알게 된 주몬지 아키라가 제안한 시체유기 아르바이트를 수락하기에 이른다.


카드빚에 시달리는 신용불량자에 관한 이야기인 미야베의 ‘화차’처럼, 기리노의 ‘아웃’도 사회문제를 다루고 있다. 일본의 미스터리물이 잘 읽히는 이유는 단지 탄탄한 구성에서 오는 대중적 흡입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사회에 대한 모종의 발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걸출한 여성들은 모두 디킨스의 후예들이다. 내가 볼 때 좋은 서사란 폼잡지 않고 인물들의 피로를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물들의 피로는 전적으로 자본주의적인 피로다. 그것은 영화나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기리노의 ‘아웃’은 자본주의적인 피로감을 온몸으로 느끼는 여성들의 축 처진 어깨를 폼잡지 않고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욕먹지 않을 작품이다.


군말- 서점에는 두 권으로 분리되어 출간되었다.
군말 하나 더- 조만간에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에 도전할 예정이지만, 읽고 싶은 추리물 후보작들이 더 있다. 하여간 여름은 추리물 읽기에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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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때때로진실 2007/08/03 11:13 # 답글

    기리노 나쓰오 여사의 단편집도 수준급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게걸스럽게 읽었어요.
  • Shoo 2007/08/03 11:17 # 답글

    '아임 쏘리 마마'는 '이 작가는 이 정도인가?'하면서 갸웃했었는데- 아웃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해야겠군요.
  • Elliott 2007/08/03 12:27 # 답글

    때때로진실/ 아. 목록에 올려두어야겠네요. 추천 감사~~
    shoo/네. 다시 도전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 뮤탄트 2007/08/03 18:50 # 답글

    이것두 읽어봐야겠네요. 저두 미야베 미유키만 딱, 읽어봐서 ㅎ
  • Elliott 2007/08/04 08:45 # 답글

    그럼 아마 저와 비슷한 감상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처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을 때, 딱 그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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