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볼 때 기자는 크게 두 가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이 기사가 가정하는 바는 대학이 수익을 내면 그 이익이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갈 것이라는 것과 높은 재정수입이 학생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는 한 마디로 교육도 기업처럼 시장경쟁을 통해 수익을 내면 전체구성원의 혜택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논리는 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이는 이른바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무조건적인 성장을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와 무척이나 유사하다. 일단 성장을 하면 그 몫은 고스란히 사회구성원에게 공평히 돌아갈 것이라고 성장우선주의자들은 주장한다. 하지만, 성장의 폭을 어디까지 잡을 것인가, 어디까지 올라가야 ‘성장’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확실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대학이 어느 정도까지 수익을 내야 적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고, 학생들에게 얼마의 지출이 사용되어져야 학생 개개인의 복지수준이 증대되는가는 불명확하다.
게다가 학생들에게 많은 돈을 투자한다면 학생들의 능력이 상승할 것이라는 논리도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재정수입이 높은 미국의 사립대학들만이 좋은 학생들을 배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디 과연 그런가. 인재육성이라는 것에서 자본이라는 것은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그 자체로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대학에서 한 개인이 교육에 만족을 느끼는 요인들이란 자본만으로 한정시킬 수 없다. 자본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요인들이 상호작용해야 개인은 그 대학에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기자는 미국식 운영방식이라는 그러니까 막대한 재정을 확보하는 것만이 좋은 대학의 유일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비약이 또 어디 있는가.
미국과 유럽의 대학문화의 토양은 뿌리부터 다르다. 이는 대학에 대한 인식의 차이로 귀결된다. 때문의 어느 한쪽의 방식으로 다른 한쪽의 방식을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자. 과연 미국식 운영방식이라는 것이 과연 유럽대학들이 재정적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설혹 유럽대학들의 재정적 위기가 일반적인 사실이라고 해도 그러한 사실에서 어떻게 대학교육의 하락, 인재양성의 실패의 경향성 같은 내용들을 추론해낼 수가 있는가. 나는 이것이 맹목적인 시장주의의 무리한 적용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 나는 이 기사가 한국의 사립대학들의 기부금입학, 등록금인상 등의 주장의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현재의 사립대학들이 과연 대학운영이 불가능할 정도로 재정이 부족한가. 오히려 통계는 평균적 사립대학의 경우 필요이상의 등록금을 걷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 것이 필연적이어야 하는데 어디 그런가. 오히려 학생들은 점점 더 높아지는 등록금을 조달하기 위해 학업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런 현실가운데 대학에 더 많은 자본을 강조하고 이른바 미국식의 기업적 운영방식을 종용하는 것은 무슨 의도인가.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언론사주의 자유로 이해되듯, 대학의 자유도 대학운영자의 자유는 아닌지. 한국의 대학들이 시장논리에 깊이 침윤되어 있고 대학의 본연의 역할을 잃어가고 있는 형편에서 언론의 이런 보도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과연 대학이란 무엇인가. 이 당위에 가까운 질문 앞에 자꾸만 무참해지는 건 비단 나뿐일까.
[동아일보] 유럽대학들 '쩐의 한숨'
덧글
하치/ 코미디 신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