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의 대가들 by Elliott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예지 편집장 문성근의 인상적인 명대사. 명색이 작가라는 놈들이 자기 문체도 없어요. 지당하신 말씀이다. 무릇 세상에 작가라 티를 내려면 자기 문체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작품이 몇 편이 있건, 베스트셀러가 있건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문체가 없다면 그는 작가라는 고명을 사용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각별하게 생각하는 세 명의 에세이스트가 있다. 김훈, 고종석, 김규항이 그들이다. 여기서 ‘각별하다’는 형용사의 의미란 그들의 책을 빠짐없이 구입해 읽었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에세이를 쓰는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볼 때 신뢰할 만한 에세이를 구해 읽기란 쉽지 않다. 물론 여기서 신뢰의 기준이란 당연히 자신만의 문장을 쓰는 가의 여부다. 때문에 내가 꼽은 세 명의 이름이 빛날 수밖에 없다.


나는 김훈을 편애한다. 내가 김훈을 편애하는 이유는 그의 문장이 탐하고 싶을 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은 읽는 이로 하여금 취하게 만든다. 그는 소설가로 단기간에 한국에서 이른바 권위 있는 문학상을 석권할 정도로 문학적 성취를 일구어냈지만, 그는 작가적 에스프리는 에세이스트의 그것에 가깝다. 그가 소설에서 이순신과 우륵을 등장시켰을 때 그가 버리길 주저하던 몽당연필로 써내려간 문장은 실상 그가 밥을 벌기 위해 세상을 뛰어다니면서 온몸으로 쓰는 문장과 같다. 나는 문장보다도 밥과 일에 더 정직한 태도를 보이는 그가 좋다. 모든 세상과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 인지된다고 할 때, 감각에 대한 그의 편벽스러움이 나는 좋다. 지성보다도 윤리보다도 문장이란 결국 온몸으로 쓰는 것이기에. 나에게 그는 소설가 김훈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고 유랑하면서 전국 방방곡곡의 노동의 현장 속에서 노동자들에게 한없는 열등감을 느끼는 에세이스트 김훈으로 각인되었다. 소설 나부랭이는 이제 그만 쓰고 어서 자전거여행 3권을 쓰기 위해 자전거 좀 손보시라고 그에게 주문하고 싶다.


나는 고종석을 편애한다. 내가 고종석을 편애하는 이유는 그의 문장이 탐하고 싶을 만큼 깊은 감수성으로 물들어있기 때문이다. 그의 문장은 때론 고답적이고 지적인 문장으로 일관할 때도 있지만, 그의 문장이 결국 읽히게 만드는 동인은 그의 감수성이다. 나는 그의 감수성의 원천이 풍부한 교양을 잇는 윤리적 감각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필자 중에 지식의 넓이와 깊이로 따지더라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할 수 있지만, 문장에서 그의 지식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윤리적 감성이 그의 생각 전체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서 그는 한글이 정말 아름다운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그가 쓴 국어학 관련 에세이들은 하나하나 읽어도 버릴 것이 없다. 그의 문장은 한글의 본질, 나아가 언어의 본질에 대해 충분히 벼리고 벼린 문장이다. 김훈의 글처럼 나는 그의 글도 반드시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에세이만큼이나 소설도 잘 쓴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에세이스트이다.


나는 김규항을 편애한다. 내가 김규항을 편애하는 이유는 그의 문장이 탐하고 싶을 만큼 검박하지만 동시에 힘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의 문장에서 엿보이는 생각들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오히려 나는 그가 단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두둔하고 싶다. 그의 문장을 읽다보면, 이건 나도 쓸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소박한 문장을 쓰지만 막상 쓰려고 하다보면 그의 문장이 외려 쓰기 힘든 문장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소박한 문장은 결국 지난한 퇴고의 결과다. 그는 리듬과 가독성에 집착할 정도로 지나치게 퇴고를 많이 하는 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성이 부르주아와 유산계급의 악세서리로 전락했기 때문에 그들이 쓰는 문장에서 드러나는 화장기를 혐오한다. 그의 문장이 쉬운 이유는 이런 자신의 정치적 스탠드와도 관련이 있다. 우파는 자신만의 교양에 머무른 채 자신만 건사하면 되지만, 좌파는 다른 사람들까지 챙겨야 한다는 그의 유명한 전언은 얼치기 좌파들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진정성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당신이 인간에 대한 존엄을 믿는다면, 당신의 글은 누구에게라도 가닿을 수 있게 쉽게 써라. 그에게 있어 글쓰기도 역시 정치다.


덧글

  • 아라 2007/01/14 23:40 # 답글

    아 김훈아저씨는 저도 너무 좋아해요 ㅠㅠㅠㅠ
    읽고 있으면 찹찹한 바닷바람이 생각나요~ 칼의 노래는 사서 고이 모시고있었는데 동생이 책을 걸레처럼...후.....[] 쓰신 두 작가의 저서도 읽어봐야겠네요^0^!!
  • 아이비 2007/01/14 23:42 # 답글

    김훈씨 좋아합니다. 모 백일장에서 전년도 심사위원 란에서 김훈씨 이름을 발견 했을때, 왜 전년도엔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는지 한스러웠습니다. 저는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제일 좋더라고요. 김훈씨의 윤곽이 살작 잡힐 듯 해서 즐겁고 아릿했습니다. 김훈시 문장은 그저 '읽음'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필사 할 때 가장 즐겁기도 하고요.
  • 하치 2007/01/14 23:43 # 답글

    읽어보니 김규항님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김훈의 <자전거기행>의 첫부분 정도를 읽고 있는데, 서정적인 표현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같은 구절을 읽으면서 어떻게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사실 저한테 김훈은, 이순신장군으로 각인되어 있었거든요. 책 표지부터 저를 짐짓 놀라게 했었는데 은유와 감성적인 표현들이, 저같은 사람에겐 두번씩 읽어야될 정도였답니다.
  • 까만달 2007/01/15 02:44 # 답글

    그러게요.. 저도 자전거값에 조금 보탰는데 말이에요..ㅋㅋ
  • Elliott 2007/01/15 09:11 # 답글

    아라/ 찹찹한 바닷바람, 이란 표현 참 멋져요. 김훈이 항상 글의 말미에 덧붙이는 '만경강에 바친다'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그나저나 책은 깨끗하게. 흣.

    아이비/백일장 심사에 김훈씨가. 우와 어딥니까. 궁금하네요. 저도 말씀하신 산문집 좋아합니다. 역시 김훈은 에세이죠. 소설보다. 필사까지 하시는 걸보니 정말 팬이신가 봐요.

    하치/ 김규항씨의 책은 두 권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아 찾아보는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자전거여행,을 읽으면 어딘가로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들죠. 고독을 맞보며.

    까만달/ 조만간 떠나시지 않을까요. 흣.
  • 실버 2007/01/15 10:28 # 답글

    김훈씨..정말 편애하지 않을 수 없죠. 글에 담긴 지나친 보수성때문에 움찔하게 만드실때도 있지만 정말 한 문장을 읽고 또 읽게 만드시는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한글로 씌여진 문장이로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라구요.
  • 2007/01/15 16: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07/01/15 17:5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바스티스 2007/01/15 18:58 # 답글

    TOP 100 등극 축하합니다. 이제 피플은 정말 시간문제...ㅋㅋㅋ
  • Elliott 2007/01/16 01:41 # 답글

    실버/ 김훈은 참 좋은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말씀하신 것과는 달리 김훈이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단지 허무주의자일 뿐인 걸요. 그가 자신은 여전히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고 말할 때, 허무주의자로서 그의 색깔을 충분히 드러냈다고 봅니다.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공개/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비공개/ 네. 고맙습니다.

    바스티스/ 무슨 말씀이십니까. 피플은요. 하핫.
  • 히치하이커 2007/02/09 14:39 # 답글

    김규항님의 블로그 타고 왔습니다. Elliott님도 글을 잘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 )
  • 뚱땡이 2007/02/10 07:18 # 삭제 답글

    난 어째 넷 중에 당신 글이 제일 눈에 잘 들어오오. 당신글을 편애할라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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