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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의 목적

얼마 전 화제의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를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다. 11회 분량이었지만 이야기 전개가 상당히 흥미로웠기 때문에 그 많은 분량을 소화해 내는 데는 어렵지 않았다. 이 드라마는 치아키 신이치라는 음악 신동과 노다 메구미라는 후쿠오카 출신의 황당한 피아노 전공 여학생을 중심으로 음대 학생들의 음악의 대한 열정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작품인데, 드라마 속에 삽입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말러나 거쉰 같은 서구 고전음악들이 새롭게 들리는 경험은 개인적으로 얻은 정서적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전음악에는 조예가 전무한 나로서는 고전음악도 들어보면 참 감동적이구나 하는 생각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이 드라마가 고전음악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이 상당히 경쾌하다는데 있는 것 같다. 일단 나부터도 서양의 고전음악하면 교양 있는 부르주아들이 성대한 홀에서 근엄하게 앉아서 거기서 요구되는 일련의 격식을 따라 감상하는 상위계급의 예술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등장하는 ‘노다 메구미’나 ‘미네 류타로’, ‘마츠미’ 같은 인물은 돈 많고 교양 있는 집안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현실 속에서 이른바 고전음악을 배우거나 전공하는 사람들의 경우는 평균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적어도 이 작품에서 보여 지는 고전음악의 대한 태도는 생각보다 뻣뻣하지 않다. 피에르 부르디외가 주장한 취향과 계급의 함수관계란 요컨대 특정 취향이 갖는 개방성 혹은 장벽의 정도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고전음악은 개방성이 낮고 장벽의 정도가 높다. 노다메 칸타빌레는 이런 고급취향의 문화가 갖는 권위적 태도를 유연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데서 좋은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제 사람들은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가 우디 알렌의 영화 ‘맨하탄’의 오프닝 신에 배경음악으로 나온 사실보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했다는 사실이 더 익숙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조지 거쉰의 이 위풍당당한 음악을 들으면서 ‘교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드라마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사실 서양고전음악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귀족적 편견은 이른바 부르주아 교양의 속물근성과도 연관이 있다. 본디 교양이라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성격의 것으로 출발했지만, 근대 이후로는 교양의 역할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하는데 보조를 제공하는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상류계급들의 구별짓기로 전락했다는 것을 문화사가들은 보여준다.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고전음악에 대한 편견은 여기에 바탕을 둔다. 하지만, 음악을 포함해 예술의 힘은 인간에 대한 성찰에 있다. 이를 제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있다. ‘시스테마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베네주엘라의 시스테마,라는 음악프로그램은 그런 예술의 잠재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시스테마는 하위계급 출신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은 상류계급 출신들이 연주하는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시스테마의 창립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는 음악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그저 인간이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가의 85%가 빈민인 베네주엘라에서 계급상승을 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많은 하위계급 출신의 젊은이들에 범죄의 유혹이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테마는 이런 젊은이들이 음악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존엄성을 발견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리고 시스테마 출신의 많은 젊은이들이 유럽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결과를 거두기도 했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아코스타라는 젊은이는 시스테마 출신인데 베네주엘라에서는 흔한 빈민가 출신이다. 하지만 아코스타의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꿈을 이룬 것이 너무나 대견스러워 한다. 평범한 가정출신이라면 엄두도 못 낼 클라리넷을 공부해서 성공한 아코스타의 이야기는 음악과 예술 그리고 그것을 떠나서 교양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비근한 예로 하위계층의 젊은이들을 상대로 인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의 ‘클레멘트 코스’도 있다. 미국의 교육자인 ‘얼 쇼리스’가 고안한 대안교육 프로그램인 클레멘트 코스는 미국을 넘어 여섯 개 국가에서 실행되고 있다. 얼 쇼리스가 갖는 인문학에 대한 접근도 역시 교양교육과 계급적 재생산의 관계에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행동하게 만드는 가치지향적 학문인 인문학을 가르친다는 것이 무척이나 이상적이고 때로는 전복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얼 쇼리스의 문제제기는 폐쇄된 교양교육이 결국 계급적 간극을 고착화시킨다는데 있다. 하위계층들은 상대적으로 노동에 투여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교양을 습득할 시간이 없고, 이는 그 계층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체념하고 받아들이는데 익숙해진다고 얼 쇼리스는 주장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계층들이 갖는 여유와 비교해 볼 때, 개별적인 하층계급들이 갖는 전망이 얼마나 암담한지 유추해보기란 어렵지 않다. 요컨대, 시스테마나 클레멘트 코스의 사례들은 인문학과 고전음악과 같은 교양지식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그것은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으로 간명해진다. 그렇다면 근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교양이 갖는 폐쇄적 통념들을 해체하고 인간과 세상으로 들어가자는데 있다. 나중에 한 번 더 쓸 계획이 있지만, 나는 인문학이나 교양교육의 위기를 풀 수 있는 해법도 이 사례들이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결국 우리들의 지식이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질 때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지식은 오로지 인간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어야만 한다. 물론 현실은 수월하지 않다. 인문학과 서양고전음악 관련 종사자들의 엄숙주의도 넘어야 하며, 교양에 대해 만연해있는 실증/실용주의적 태도도 극복해야한다. 일부 스노비스트들의 교양에 대한 천박한 태도도 또 하나의 걸림돌일 수 있다. 그러나 인문학과 교양이 인간과 세계가 관계를 맺는 첫 단추라면, 우리는 좀 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많이 헝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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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은하 2007/01/08 01:19 # 답글

    요새 날이 갈수록 인문학이 교양인의 구별짓기가 되어간다고 느끼던 차에 시원한 글입니다. 수유 + 너머 등 재야 학자들도 화석화된 대학의 학문풍토를 극복하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이 부분은 뛰어넘지 못한 거 같아요. 인문학이 베네수엘라 시스테마 프로그램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정말 좋겠는데.

    다음 번에 쓰실 글도 기대합니다. *ㅁ*
  • 다이몬 2007/01/08 01:48 # 답글

    노다메 칸타빌라는 여기서도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일본 드라마가 갖고 있는 식상함과 오버스러움이 있지만, 그래도 신선한 소재와 클래식이라는 다소 어려울 수 있는 문화 부분에 대한 해석이 좋았습니다.

    영국 문화 연구소에서의 문화 이론운동 자체가 교양이라는 문제와 떨어질 수 없었지요. 비교적 최근에 나온 이글턴의 culture라는 책 역시 이러한 문제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클래식이 high culture라는 의식은 계급의 아우라를 지키고자 하는 부르조와 계급들이 급조한 이념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이전 귀족 계급으로의 문화적 편입을 보여주는 도구였거든요. 현대에 와서 클래식의 위치 역시 부로조와적인 삶과 떨어질 수 없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러시아나 동유럽에서 우리가 고급문화라고 부르는 연극이나 클래식이 자연스러운 상하 구분 없는 문화로 발전했다는 것 역시 눈여겨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적 하층민들도 볼쇼이 발레를 볼 수 있었고, 카프카의 연극을 즐거보는 문화 형태를 얼마전에 텔레비젼에서 보고 무척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부로조아적인 Culture에서 초기의 이념적 장막만 거두어 낸다면 계급성이 문제시되지 않는 문화를 양성해낼 수 있다고 봅니다.
  •  nina  2007/01/08 01:51 # 답글

    맞아요 맞아 ;ㅁ;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것.
    돈 버는 것도 좋고 잘 나가는 것도 다 중요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생각'을 하고 사는지.
  • Elliott 2007/01/08 09:31 # 답글

    은하/ 결국, 세상을 해석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테제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의 지식체계는 '해석의 차원'이 아닌 '자기구별'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저는 그것이 지식이 갖는 역동성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것. 하지만, 조건은 너무 척박한 게 사실입니다. 쩝.

    다이몬/ 사실 영국의 문화연구는 문화사나 일상사를 연구하는 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글에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이렇게 좋은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특히 러시아나 동유럽에서 고급문화 발전의 과정은 저도 처음 아는 사실이라 흥미롭네요. 결국 문화의 계급성은 일정한 지식이나 교양의 문제가 아닌 '기회의 문제'라는 사실이 중요해지네요.
  • Elliott 2007/01/08 09:34 # 답글

    nina/ 맞습니다. 한국의 인문학/교양교육풍토가 척박한 것도 우리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지나치게 경제동물화 되었다는데 가장 큰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경제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교양과 같은 상부구조에 어디 신경쓸 겨를이 있겠습니까.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수준이 올라갔다고 생각하지만, 분위기는 여전하다는 생각이.
  • marlowe 2007/01/08 15:52 # 답글

    [스윙걸즈]에서 한 여학생이 "재즈란 가방끈 긴 부르죠아들이나 듣는 것 아냐?"고 반문하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요즘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한 때 영화감상을 하는 계층에도 이런 스노비즘이 만연했죠. 교양, 문화, 예술... 이들이 진정으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해보는 글이네요.
  • 바스티스 2007/01/08 16:52 # 답글

    이거 되게 맘에 드네요. ㅎㅎ
  • 하치 2007/01/08 17:18 # 답글

    저도 러시아에서는 가판대 할머니도 도스트예프스키를 읽으며 발레를 보러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무시할 수 없는 대단한 나라구나..하고 생각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고급의 취향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것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것들이고, 그걸 몸으로 체험하여 어느정도의 식견을 가지려면 어려서부터 부잣집 자제라거나 예능계쪽 공부를 하거나(실제 그런걸 공부하려면 돈이 많이 들구요) 그렇지 않으면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저도 그래서 나이 들고 스스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다음부터서야 음악회니 발레니 하는 것들을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것들이 너무 과대 포장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면 갈 수록 그 문턱이 낮아지긴 커녕,천정부지의 티켓값으로 점점 더 돈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화가 '소비'되고 있는 현실이니 마음이 착잡할 뿐입니다.(저도 문화생화 끊은지 오래...-_ㅜ)
    게다가 우리의 것은 교양이라는 목록에서 누락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니 그것도 안타깝고..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실 저는 독서 만큼 교양을 쌓는데 기본이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 교양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_- 쿨럭;; 올해는 좀 읽어봐야지 생각하고 있어요.쿨럭;;
  • Elliott 2007/01/09 11:51 # 답글

    marlowe/네, 저도 그 장면 기억나네요. 서구에서는 평범한 문화인데 한국에서는 천박한 귀족취향의 이미지가 덧붙여진게 저는 두 가지가 있다고 봅니다. '재즈'와 '와인'이죠. 어떤 경위로 그런 이미지들이 축적되어 왔는지 참 궁금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도 그런 것 같구요.

    바스티스/ 감사합니다. ;;
  • Elliott 2007/01/09 11:58 # 답글

    하치/ 맞습니다. 이른바 부르주아적 교양을 쌓으려면 비용이 드는데, 그게 평범한 계층들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인위적으로 취향을 조절하는 것은 문제가 있겠으나, 그러한 취향들이 결국 사회에서 계급의 위계를 고착화 하는데 기여한다면, 정부나 학계, 사회단체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에서는 문화라는 단어가 갖는 이미지가 부르주아의 그것과 함께 연상되곤 하는데, 이는 우리의 문화나 교양교육의 대중화나 일상화가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겠죠. 게다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도 얼마나 분주하고 팍팍합니까.
  • 바스티스 2007/01/09 18:03 # 답글

    엥겔 지수 내의 엥겔 지수네요. 생활 중에 문화의 비율에서, 또 그 문화 내에서도 고급과 저급의 격차가 갈리면서, 이중으로 차별을 만들고 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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