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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 생각

 

그녀의 두 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를 읽었다. 표제작 <침이 고인다>는 생각 외로 감흥을 느끼지 못해서 나는 선뜻 그녀의 '소포모어 징크스'를 단정할 뻔 했다. 그러나 그녀의 다른 단편들을 읽으면서 나는 ‘작가’로서의 김애란을, <달려라, 아비>에 이어 여전히 동세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그녀를 신뢰하게 되었다. 이는 단지 좋은 작가 목록에 그녀의 이름을 추가하는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한 뼘 더 개척해간 그녀의 성취를 사람들은 인정해야만 할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그녀는 문단의 무서운 아이로 성장해나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내가 볼 때 김애란의 존재가 갖는 문학적 의의를 판단하는 것은 거기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세대의 목소리’의 역할을 자신의 이야기들을 통해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칭호가 그녀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김애란은 자신의 세대에 대해 과장하지 않고 정면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세상에 대한 냉소와 절망보다는 연민과 씩씩함으로 그들을 북돋아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작가의 자의식이 먼저 드러나기보다는 세상에 대한 애정이 오롯이 머리를 내민다.


평론가 이광호가 지적하듯, 김애란의 작품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것은 공간에 대한 감수성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작은 방이다. 손바닥 만한 고시원, 원룸, 독서실, 반지하, 옥탑방. 그 비루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소설의 인물들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투쟁한다. 자기 유폐와 격절의 시간은 그러한 주거환경 속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김애란이 보기에 그 공간은 동세대가 개별성을 확보하는 거점이자 그것의 완성으로서 기능한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동세대에 대한 인식과 도덕적 판단을 전도시킨다. 기성세대들에게 젊은이들은 그저 게으르고 무능하고 도덕적 인식이 전무한, 그래서 자기 ‘방’에만 머무른 채 가상세계에만 몰두한 몰개성적인 세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김애란은 오히려 우리 세대들의 욕심은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최소한의 삶의 자존을 확보하기 위해 김애란 소설 속의 그녀는 자기만의 방을 찾아 헤메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신림’으로 ‘노량진’으로 혹은 도시의 변두리로 밤낮을 지하철을 타고 작가가 ‘지하의 별자리’라고 부르는 곳을 여기저기 전전하는 것이다.


김애란에게 가족은 무엇일까. 1997년 IMF 이후, 이 불안한 혈연공동체는 뿔뿔이 흩어졌다. 자식들은 진학과 취업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고, 젊음의 기운이 증발해버린 그곳을 어머니 혼자 감당한다. 김애란에게 남성이란 초라하고 측은한 존재로 축소된다. 물론 그러한 존재의 인식을 가져다 준 계기로 1997년이 제공해주었다는 것을 알기란 어렵지 않다. 그녀에게 남성/아버지는 빤히 보이는 외도를 감행해거나, 어딘가로 잠적해있거나, 비가 오는 날 만취한 채 집 문 앞에서 쓰러져 있다. 나는 처음에 그녀가 남성이 희화화 되고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연민에 기반해 있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달려라, 아비>보다 <침이 고인다>에서 남성들에 대한 그녀의 연민이 갖는 범위는 아버지에서 남성일반으로 확대된다. 여하튼 깨져버린 가족의 초상을 수습하기 위해 어머니는 국수를 말거나 만두를 빚는다. 남성-가부장의 실질적인 역할은 어머니에게도 위임된다. 그래서인지 김애란에게 어머니를 슈퍼우먼처럼 강인하고 당당하다.


나는 서른 살이 될 김애란이 기대된다. 20대 김애란에서 30대 김애란의 화두는 무엇일까. 그녀는 점점 자신의 문학적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 김애란이 주목받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문단에 20대 작가들이 부족하는데서 연유한다고 하지만, 이 사실이 김애란의 작가적 능력을 폄훼하는 구실로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오히려 김애란 같은 20대 작가들이 더 많이 나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동세대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있다. 그러니까 김애란은 20대 작가 지망생들에게는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도전과 응전의 가열찬 맞물림. 이 속에서 좋은 이야기들은 많이 나올테고, 세대에 대한 담론적 깊이는 더욱 커져갈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든, 영화든 어쨌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스무 살들이 아무쪼록 올 해에는 많이 돋아나길 희망한다. 

by Elliott | 2008/01/05 11:06 | 소설 읽기 | 트랙백(2)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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